<젠요가 저널, 요가일기 제 2편>

요가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 중학교 방과후에
제공되는 스포츠 활동중 하나로써 였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볼링, 테니스, 골프, 피구, 축구, 발야구 등 다이나믹한 운동이라면
가리지 않고  즐기는 천방지축 소녀였다. 쉬지않고 몸을 움직이며
땀을 빼고 경기에서 이겼을 때 아드레날린이 몸 안에 몰아치는
순간을 너무 사랑했다.

학교 피구경기가 있었던 어느날이었다.
열이 펄펄 끓을 정도로 아팠으나 경기에 빠지고 싶지
않았던 나는 열기에 취해 공을 쏘아대며 상대편을 한명씩
떨어트렸고,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마치 비라도 맞은 것 마냥 상의는
땀으로 흥건했고, 열이 감쪽같이 내려가 있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것이 내가 생각하는 ‘운동’에 전부였다.

요가는 다이나믹하지 않다? 요가에 대한 오해

그래서인지 나처럼 다이나믹한 사람에게 요가는 불가능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방과후 활동으로 요가를 택한
아이들은 하나같이 창백하고 비쩍 마른 샌님같은 남자아이들
뿐이었다. 심지어 여자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이것이 요가에 대한 내 심심한 마지막 기억이다.

그리고 2018년 가을,  
떠밀리듯 갑자기 듣게 된 요가수업은 
생각외로 ‘다이나믹’그 자체였다.
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몸을 이리저리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보다 더 많은 근력과 노력
그리고 집중력을 요구한다는 것을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까?

처음 들어간 요가 수업은 젠요가의 요가 클래스 중
빈야사였는데, 그 짧았던 한 시간 내에 나는 사시나무떨듯
수시로 떨었고, 땀이 비오듯 떨어졌다.
마치 한시간동안 격렬한 스포츠 경기를 뛴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신 나는 누구도 패하게 하지 않았고,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지도 않았다. 다만 수업의 마지막 순간
손을 가슴 앞으로 모아 인사를 하는 순간까지
가부좌를 튼 다리부터 머리까지 조금씩 무언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요즈음에 나는 빈틈없이 반복적인 일상에서
각각의 차이와 그 나름대로의 특별함을 발견하고,
의도한 습관이 몸에 배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고,
나날이 조금씩 무언가가 쌓여감에 불안정한 미래에
한줌의 위로와 같은 안도감과 안정감을 느낀다.

처음 체험한 요가는 그런 정적인 일상 안의 역동성,
다이나믹함을 발견하는 것과 굉장히 닮아있었다.
비슷해보이는 정적인 자세들 사이에 서로 다른 근육들을
바꾸어 쓰며 그 세세한 차이를 체감하고 동물, 식물을
닮은 요가 자세들이 내 몸에 배어 자연과 조금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드는 것.

네 발로 땅을 움켜쥐며 사는 짐승이나 땅에 뿌리박혀
사는 식물은 아니기에 신발과 아스팔트에 의해,
고층 혹은 지하로 땅에서 강제로 떨어트려진 미아가
되어버린 내게 땅에 기운이 몸안에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남과 승패를 겨루는 역동적인 스포츠보다
혼자 뭉근히 견디고 이겨내는 요가가 이렇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이긴다는 것이
더이상 큰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승리에서 의미를 찾고 나를 증명하는 것보다
나의 의미 자체를 탐구하는 것이 더 즐거운 서른이라서 좋다.

‘다이나믹’하게 내게 컴백한 요가.
기억 속 풋풋했던 샌님소년들은 지금 내가 알게된
것들을 그 나이때부터 알고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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