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요가 요가일기 4편

오라의 존재를 현실에서 와닿게 해주었던
손 안의 에너지 명상 수업의 경험을 거름삼아
다음 수업에서는 몸의 소리에
더 주의깊게 들어보기로 했다.

눈, 코, 입, 귀, 피부의 오감으로 자극되어
바깥쪽으로 분산되었던 내 의식을
몸 안쪽으로 돌려보기 시작했다.
몸의 느낌과 소리를 듣고 각 파트에서
느껴지는 느낌을 조각조각 내어보았다.

내 매트를 짚고 있는 손바닥과 발바닥에
집중하거나 내 무릎이 직각으로 구부러졌는지
직각을 맞추었을때 허벅지 사이에
어떤 통증이 느껴지는지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내가 자세를 어떻게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 거울로 내 자신을
비추어 보기도하고

그렇게 근육에 피로가 쌓여
몸이 후들거리기 시작했을 때
후-, 후-, 후-, 후-
나도 모르게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사람처럼 빠르게 몰아치던
호흡을 그제서야 알아채고

후우우우, 하아아아, 후우우웅, 하아아아
다시 갈비뼈를 힘주어 벌려보고,
아랫배 깊숙히 까지 숨을 쉬어 넣어본다.
몸의 떨림이 조금은 진정이 된 느낌이다.

이달의 자세, 아스타바크라사나

그 다음날 들었던 요가 수업은
전에 들었던 수업과 또 달랐다.
이 수업은 한달에 한 자세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갈고 닦는 수련을 하는 과정이었다.

그 달의 자세는 아스타바크라사나Astavakrasana였는데 
말을 풀어서 보면 Asta – 숫자 8, Vakra – 각,
Asana – 요가동작으로 합쳐서 보면
팔각 자세라는 뜻이었다.

수업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달의 동작인 아스타바크라사
동작을 하기 위해 몸 여러 부분을 풀어주는
아사나들을 천천히 빈야사로 흐르듯이 훑는다.

사실 빈야사는 산스크리트어로 ‘흐르다’라는
뜻인데 여러 동작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마지막 동작을 하기 위해 필요한 근육과 인대가
유연하게 늘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아스타바크라사나’라는 호수로 내 몸이
흘러들어가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처음에는 천천히 흐르다가 조금씩 더
자연스럽고 빠르게 흐르고 어느새
마지막 동작에 이르러보니 매트는
뚝뚝 흐르는 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쾌감까지 느껴졌다.

내 몸 바깥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명상일까

명상이란 것을 항상 어렵게만 생각했었다.
오라처럼 미신의 어떤 한 영역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명상을 사전에 찾아보니
“고요히 눈을 감고 깊이하는 생각”이며
명상의 영어 단어 meditation의 뜻 또한
“곰곰히 생각하다, 마음을 조사하다”라는 뜻이었다.

명상이라는 것이 꼭 어떤 신비한
삶의 신비를 탐구하기 위한 것,
영혼의 해방이나 해탈, 열반과 같이
심오한 종교적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라
명상을 하는 시간 만큼은 단순히 나에 대해서만 
곰곰히, 깊이 생각하기가 아닐까?

바깥 세계로 향한 눈을 감고
내 몸 안쪽으로의 눈을 떠서
살펴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다.

하루에 하는 그 많은 생각들 중
온전히 나를 위해 하는 생각들이
얼마나 있을까?
산발적으로 자유롭게 흐르는 생각들을
파도처럼 흘러오는 대로,
몰아치는 대로 내버려 두고 그것에
따라오는 감정들까지도 받아들인채로

‘그래도 괜찮다, 이것이 세상에 끝이 아니다.
나는 지금 이 요가 동작을 취하고 있으며
또 다음 동작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일상 속에 범람하는 자극과 유혹에
시달리며 주의력 결핍장애에 걸린
우리들이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이렇게 한가지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이것이 바로 명상의 시간이 주는
선물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명상을 하는 이유는
모든 불안에 대한 극복과
일상으로의 회복이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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