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요가 요가 일기 6편 

요가를 접한지 거의 삼개월이 넘어간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씩은 꼭 수업에 참여했던
노력이 무색하게도 사실 두드러진
신체적 혹은 정신적 변화는 없는 것 같다.

일년전만해도 무용에 미쳐 있어서
일주일에 세번씩 빠지지않고 나갔던 거에 비해
요가를 알려면 해봐야한다, 라는 의무감 덕분일까
혹은 요가 특유의 정적임 때문일까
내가 흥미를 보이지 못하고 마음을 열지 못해서
변화가 더딘 거라고도 생각해 본다.

무용을 하면서는 내가 취한 포즈가 아름다운지,
내가 회전이라던가 킥을 얼마나 완벽하게 해냈는지
신체의 선이 얼마나 고르고 일정한지에 대해
무용을 하는 동안에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쉬지않고 몸이 흘렀기 때문에
마음도 자연히 끊임없이 자유롭게 흘렀다.

요가는 정반대로 몸을 가만히 두고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다.
무용과 정반대로 아사나를 완벽하고 빠르게 해내는 것이
포인트가 아닌 것이 불편하고 어려웠다.

불편하고 어렵기 때문에 더욱 흥미를 갖기 힘이 들었다.

쉬지않고 거울에 내 포즈가 어땠는지를 살피고
다음에 그 옆 사람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살폈다.
그리고는 어머 조금 더 다리를 찢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허벅지 근육이 찢어지게 아플 때까지 늘리곤 했다.

심지어 옆사람의 요가복이 얼마나 예쁜지
몸매가 얼마나 좋은지 몰래 점수도 매겼으니까

숙련된 요기가 아닌 이상 포즈의 완벽함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무용에서 배운 습관이 있는지라
그 습관의 관성을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이달의 자세: 시르사사나Sirsasana 

이번달의 자세는 물구나무 서기 였다.
시르사사나Sirsasana 라고도 하는데 유명연예인들이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종종 선보이는 고난이도 자세!
소위 있어보이는 자세를 드디어 나도 할 수 있다니 조금 설렜다.

동생이 몇 달전에 이효리나 아이유가 하는
물구나무 비디오를 보고 자기도 해보겠다며
집에서 겁도 없이 시도하는 것을 비웃었던 것이 생각났다.

다리를 올리면서 부들부들 떨다가 휘청 하더니
뒤로 넘어가버리고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었다.

왠지 나는 선생님께 차분히 배우는 거라
그것보다는 잘할 수 있을 꺼라고 호기롭게 시도해 보았다.

고양이 자세 준비자세에서 양 팔꿈치를 반대쪽 손으로 감싼 후에
팔꿈치를 바닥에 내려놓으면 어깨 너비만큼 팔꿈치가 벌어져
자연스럽게 물구나무 서기 준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런 다음 손을 풀고 깍지를 낀다.
손깍지를 껴서 머리를 받칠 것이기 때문에
새끼 손가락을 곱게 접어 넣어 평평하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깍지에 머리 정수리를 깊숙히 박아
손과 팔이 머리와 목을 안정적으로 지탱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엉덩이를 들어올려 무릎을 편다.

여기서 두가지 선택을 할 수가 있는데
무릎을 편 다리를 몸쪽으로 최대한 가까이
한 다음 발끝을 서서히 바닥에서 떼면서
몸의 수평을 유지한채 다리를 들어올리는 방식이 있고

무릎을 굽힌채로 사뿐히 발끝을 들어올려
정치한다음 발을 위로 차올리는 방식이 있다.

잘하려는 노력이 망친다.

자신만만하게 시도해보았으나
나는 연커푸 뒤로 발라당 까져서
펑, 펑 소리를 내면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도 했던가
기어코 해내고 말꺼야라는 생각에
수련시간 내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뒤로 자꾸만 넘어갔다.

요가 수련이 끝나고 나서 선생님과 나누던 대화 중
아 내가 또 마음이 너무 앞섰구나 깨달았다.
빨리 포즈를 성공시켜야겠다는 마음이 앞서
숙련자도 느리게 중심을 잡아가면서 하는 자세를
아무렇게나 발만 들어차 올렸던 것이다.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문제는 필시 아닐 것이다.
문제는 빨리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가끔 몽상을 한다.
내가 자꾸 무언가를 잘하고 있는 모습들을 상상한다.
기승전이 없는 결과의 달콤함 만을 생각한다.
달콤한 몽상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장인과 대가도 아마추어와 도제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처음부터 무언가에 뛰어나지는 않은 것을
과정과 과정 안의 땀을 경시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그저 평생을 몽상을 하다가 끝날 것이다.

느림의 미학이라고 느리게 사는 법,
느리게 자신 만의 템포를 가지고 사는 것에 대해서
요즘 많이들 얘기한다.

느리게 살면 좋은 것들에 대해
많이들 말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와 닿지 않았었다.

빠르게 가는 토끼는 중간에 게으름을 부리다가
느리고 꾸준하게 가는 거북이 에게 추월을 당한다는 이야기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흐르는 물이
천지와 강산을 바꾼다는 이야기

내 현실에는 게으름을 부리는 빠른 토끼보다는
빠르고 꾸준하게 나아가는 토끼들과
빠르게 모든 것을 파괴하고 밀어버리는 불도저들만이 존재했다.

사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 아닌가?
나는 이 현실 속에서 꾸준히 가다가는
경기에 지고마는 느림보 거북이 혹은
강산이 변하기도 전에 말라버린 초라한 물방울 같기만 했다.

상대적인 느림과 몰입에 대한 고찰.

이제 생각해보면 느림의 미학에서의
느림의 구체적인 의미는
“느리게 생각하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느리게 사는 것이 아니라 느리게 생각하여
상대적인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도록 느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몰입’을 얘기하는 것 같다.

이제야 그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알겠고,
요가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사실은 그런 것이었구나
앞으로 내게 어떻게 더 큰 도움이 될 것인지 기대가 되었다.

느리게 생각하며 사는 것이 느리게도 잘 살 수 있는 법이다!

몇가지 느림에 대한 명언들을 공유한다.

더 빠름이 빠름을 이기고 느림이 더 빠름을 이기고 더 느림이 느림을이긴다.  
즉 속도는 상대적인 것이며, 예를 들어 일을 할 때야 미친 듯이 빠르게 해야 하지만
쉴 때는 아무런 긴장 없이 아주 느리게 휴식을취해야 한다.
이러한 조화가 바로 속도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아는 것이다.     
 

-김종래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정도에 정비례한다.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

-밀란 쿤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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